우리는 연애의 시시콜콜한 모든 것을 기록했다. 러브 나는 너 아니면 안 돼. 고백 멘트로는 좀 구리지 않나? 문 앞에 딱 달라붙어 그런 생각을 했다. 좁아터진 콜라텍 직원 탈의실에서. 그곳에 나만 있는 건 아니었다. 로커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 끊임없이 손톱으로 로커 문을 두드리는 다른 직원과 함께였다. 나와 거의 동시에 탈의실에 들어와 옷을 갈...
* Trigger warning: 살인, 죽음에 대한 묘사가 일부 있습니다. ** 장르 클리셰를 기반으로 쓰인 같은 시리즈(어드벤처 타임)의 글(0과 1)과 동일한 배경과 설정을 공유하는 글입니다. *** 웬즈데이 어드벤처-Love & Hate-0과 1-... 순서로 이어지는 글입니다. Love 러브(김민규, 25세)는 요 며칠 간 기분이 별로 좋지...
한동안 뜸했었지 한 달 전부터 나는 독서실에 다니는 것을 관두고 동네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이곳저곳’이란 카페, 패스트푸드점, 은행, 정자, 도서관 등을 의미한다. 아무튼 독서실이 아닌, 정기적으로 돈이 들지 않고 냉방이 잘 되고 아무리 오랫동안 머물러도 크게 눈치가 보이지 않는 그런 곳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원래도 독서실에서 그...
원우는 집으로 가고 있었다. 순영은 베란다에서 그걸 지켜보고 있다가 원우가 완전히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왔을 때 베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전원우!” 원우는 고개를 꺾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순영이 손을 흔들었다. “밥 먹고 가!” 원우가 고개를 끄덕인 뒤 아파트 건물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순영은 계속 밖으로 몸을 내밀고 있었다. “너 학교...
1. 열일곱의 전원우는 크게 엇나가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모범적인 학생인 것 또한 아니었다. 이혼 후 생계를 책임지면서 자연스레 자신에게 소홀해진 어머니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학기 초 질 나쁜 무리에 편승해 어울려 다니기도 했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의도를 잊고 그냥 주변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중이었다. 그 흐름을 탄 결과가 친구들을 따라 가끔 수...
우리는 잠시 걷기로 했다. 반질거리는 나뭇잎이 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너는 손을 내밀어 그것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똑, 소리가 나게 따서 바닥에 버렸다. 나뭇잎은 작은 궤적을 그리며 느리게 발치에 떨어졌다. 신기하다. 숲에 들어오니까 하나도 안 덥네.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불면서 가지와 나뭇잎들이 연약한 모양새로 흔들렸다. 나는 그것들...
열아홉의 권순영을 상상한다. 춘추복을 입는 계절, 이제 막 지겹고 고통스러운 치아교정의 과정이 끝난 권순영은 세상 그 누구보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가지런한 치열을 드러내면서 카메라 렌즈를 바라본다. 손에는 책 한권을- 아마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 들었을 그 책의 제목은 <태양계의 모든 것>이다 –들고서. 졸업사진을 찍는 중이다. “어떡해, 앞니 봐...
지하철역에서 남자친구를 기다린다. 이걸 안이라고 해야 할지, 밖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는, 굳이 말하자면 야외에 설치된 지하철역이었다. 남자친구가 오는 방향의 반대편에 놓인 간이 의자에 앉아서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보고 있다. 반대 방향에서 지하철이 들어오면 바로 알 수 있도록. 지금 이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두근거...
호랑이를 만났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가 호랑이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이었다. 덩치가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꽤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 그럭저럭 어울리는 세미정장 차림이었고, 손을 뻗어 잔을 집을 때마다 어깨에서 팔꿈치로 이어지는 옷의 천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게 보였다. 그는 내가 애인에게서 바람맞은 지하 바의 테이블에 혼자 ...
“둘만 남았네.” 원우가 말했다. 순영은 처음에 그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공항 주변에 마땅히 점심 식사를 할 만한 곳이 있나 생각하느라 귀를 열어두지 않은 탓이었다. 뒤늦게야 그 말을 알아듣고 대답의 의미로 그러게, 중얼거렸을 땐 원우는 이미 자신이 한 말과 공항 내부의 풍경 모두에 흥미를 잃은 뒤였다. “집에 가자.” 올 때 그러했던 것처럼 순영이 ...
모든 길에는 끝이 있다. 그 사실을 열아홉 살 때부터 알고 있었다면 내 인생은 지금보다 훨씬 수월하게 흘러갔을 텐데- 애석하게도 나는 그것을 스무 살이 되어서야 알아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강남 모 재수학원의 문과 A반 4교시 수학 강의 중 네 번째 줄 맨 끝 책상에서. 칠판에 그려진 함수 그래프를 따라 그리다가 좌표를 잘못 찍은 나는 이제 멋대로 그래프 위...
우리가 헤어지던 날에 나는 울었다. 전원우는 나를 안아주었다. 그날 전원우의 품안에서 내가 보고 들은 몇 가지 소리와 이미지 같은 것들이 있으나 지금에 와서 그 기억들을 확신할 수는 없다. 그때의 나는 우느라고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이 그렇게나 또렷하고 선명하게 보이고 들리고 느껴졌을 리가 없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그때 나는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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